간 수치가 정상인데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가족 중에 B형 간염 보균자가 있어서 이 말이 얼마나 혼란스럽게 들리는지 몸으로 압니다. 수치는 정상인데 왜 약을 먹어야 하냐고요. 그 혼란의 뿌리가 바로 지금까지의 치료 기준에 있었습니다. 2025년, 대한간학회가 그 기준을 세계 최초로 전면 개편했습니다.
바이러스 역가가 주인공이 된 이유
간 수치(ALT)가 정상이면 괜찮다는 말, 솔직히 저도 오랫동안 믿었습니다. 가족이 정기 검진을 받을 때마다 ALT 수치가 정상으로 나오면 그냥 안심하고 지나쳤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 수치가 높으니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간 수치가 정상인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 그 자리에서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ALT(알라닌 아미노전이효소)란 간세포가 손상될 때 혈액으로 흘러나오는 효소입니다. 쉽게 말해 간에 불이 났을 때 피어오르는 연기 같은 지표입니다. 문제는 불씨, 즉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많아도 연기가 나지 않는 환자가 전체의 약 30%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가이드라인은 이 연기가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료를 시작하는 구조였습니다. 그 사이에 간은 소리 없이 망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반면 바이러스 역가(HBV DNA)는 혈액 속에 실제로 돌아다니는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양을 수치로 표현한 것입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로, 간세포의 핵 안으로 침투해 사람의 유전자 사이에 끼어들어 유전자 교란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간세포가 무한 증식하는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고, 이것이 간암으로 이어지는 핵심 경로입니다. 2006년 대만에서 발표된 연구에서 바이러스 역가가 높을수록 간암 발생률이 최대 10배까지 증가한다는 결과가 이미 나왔음에도(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기존 가이드라인은 ALT라는 조연을 계속 주연 자리에 앉혀뒀습니다.
이번에 대한간학회가 개편한 새 가이드라인은 이 구조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바이러스 역가를 유일한 주 지표로 삼고, ALT는 보조 지표로만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바이러스 역가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 고역가 구간(10의 8승 이상): 주로 신생아기부터 이어지는 면역 관용 상태로, 바이러스가 많아도 간 손상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 중등도 역가 구간(10의 4승 ~ 10의 7승):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간세포 파괴와 간암·간경화 위험이 가장 높습니다. 이 구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 저역가 구간(2,000 단위 이하): 장기 예후가 비교적 양호해 정기 모니터링이 기본이지만, 이미 간경화가 진행된 경우에는 즉시 치료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등도 역가 구간에 해당하거나, 고역가 상태에서도 31세 이상이거나 ALT 상승 또는 간 섬유화가 의심되면 즉시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간 섬유화(hepatic fibrosis)란 간세포가 반복적으로 손상되면서 간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상태를 말하며, 방치하면 간경화로 악화됩니다. 이 단계까지 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 새 가이드라인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회색 지대가 사라지면 간암도 줄어듭니다
제가 가족의 검진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애매하다"는 말이었습니다. ALT도 딱 기준치를 넘지 않고, 바이러스 수치도 높긴 한데 치료 기준에는 걸리지 않는다는 설명. 제 경우엔 그 모호함 속에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존 가이드라인이 만들어낸 회색 지대(Gray Zone) 문제입니다.
회색 지대란 두 가지 지표인 ALT와 바이러스 역가 중 어느 쪽 기준에도 명확히 해당하지 않아 치료를 받지도, 완전히 안심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체 B형 간염 환자 중 이 회색 지대에 놓인 비율이 무려 30~40%에 달했습니다. 간암 위험이 충분히 높음에도 분류가 안 되니 치료 권고를 내리기도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새 가이드라인은 바이러스 역가 하나만을 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이 회색 지대를 완전히 없앴습니다. 모든 환자가 세 구간 중 하나로 명확히 분류되고, 그에 따른 치료 결정이 일관성 있게 내려집니다. 기준이 명확해지면 환자도, 의사도 방향을 잡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그 효과를 실증한 것이 임영석 교수팀이 주도한 ATTENTION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기존 가이드라인에서는 치료 대상에서 제외되던 중등도 역가, 40세 이상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배정 전향적 임상시험으로, 치료를 시행했을 때 간암 및 간 관련 사건 발생이 약 80% 감소했음을 보여줬습니다. 무작위 배정 전향적 임상시험(RCT)이란 환자를 무작위로 치료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앞으로 일어날 결과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인과관계를 가장 신뢰도 높게 입증할 수 있는 연구 설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간암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출처: OECD Health Statistics). B형 간염 유병률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치료받는 환자가 전체의 21%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새 가이드라인이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빠르게 반영된다면, 치료 대상이 기존 25%에서 50%로 늘어나고 간암 발생률도 그에 맞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완치 신약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 증식을 강력하게 억제하지만, 기능적 완치, 즉 표면 항원(HBsAg)이 완전히 소실되는 경우는 1,000명 중 1명꼴에 불과합니다. 표면 항원(HBsAg)이란 B형 간염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이것이 혈액에서 검출되지 않으면 기능적 완치로 판정합니다. 내년 중 24주 주사 치료 방식의 1세대 완치 신약이 국내 승인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약은 표면 항원 역가가 낮은 환자에서 약 21%의 기능적 완치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0.3%이던 완치율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지만, 신약을 기다리며 치료를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간이 손상되는 속도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간 수치(ALT)가 정상인데도 B형 간염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A. 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LT가 정상이더라도 바이러스 역가가 중등도 구간(10의 4승~10의 7승)에 해당하면 치료가 필요합니다. ALT는 간 손상이 이미 일어난 뒤에야 오르는 지표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역가가 높은 상태에서 ALT만 보고 안심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 역가 검사를 별도로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바이러스 역가 검사는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A. 혈액 검사로 진행하며, 소화기내과나 간 전문 클리닉에서 HBV DNA 검사를 요청하면 됩니다. B형 간염 보균 사실이 확인된 경우라면 정기 추적 검사 항목에 포함해달라고 담당 의사에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지만, 급여 기준이 아직 이번 가이드라인에 맞게 개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Q. B형 간염 완치 신약이 나올 때까지 치료를 미뤄도 될까요?
A. 전문가들의 의견은 명확합니다. 신약을 기다리며 치료를 미루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1세대 완치 신약이 내년 승인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격과 보험 적용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치료 시작이 늦어지는 동안 간 섬유화와 간경화는 계속 진행될 수 있어, 현재 사용 가능한 항바이러스제로 먼저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Q. 회색 지대 환자였던 경우,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하나요?
A. 새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중등도 역가 구간에 해당한다면 치료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현재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아직 새 가이드라인에 완전히 맞춰 개정되지 않은 상태일 수 있으므로, 간 전문의와 상담해 본인의 바이러스 역가 수치와 나이, 간 섬유화 여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결론
가족이 "간 수치는 정상인데 왜 치료를 받아야 하냐"며 혼란스러워할 때, 저는 그 물음에 속 시원히 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혼란은 가족의 무지가 아니라, 기준 자체의 허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번 대한간학회의 가이드라인 개편은 그 허점을 메운 결정적인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술적 기준이 바뀐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이드라인이 실제로 환자에게 닿으려면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따라와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부분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준이라도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미루게 된다면, 간암 예방 80%라는 수치는 논문 안에만 머물게 됩니다. B형 간염 보균자가 있는 가정이라면, 지금 바로 바이러스 역가(HBV DNA) 수치를 확인하고 간 전문의와 상담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_QPv0iG3QQ&list=PLwzWGCe2hvoDCKvqnc5NNSf0A95DBuL77&index=6